도검난무/글

도검 드림 단문

시라데유 2022. 6. 2. 21:47

호쵸

"인처가 뭔데. 어려운 말은 쓰지마 바-보야"
"바보아니거든! 인처는 말야 과자도 주고 상냥하고 그런 사람!"
"만물상 아저씨처럼?"
"틀려! 여자에다가, 어 결혼도 했어,"
"엄마처럼?"
"응!"
"역시 바보잖아. 호쵸는 바보-! 우리엄마는 맨날 화내고 안 상냥해. 뭐가 좋은건데"
"어어..."
호쵸는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좋은거야!"
"자기가 왜 좋아하는지도 모른데요~"
"이씨...그럼 너는 이치니가 왜 좋은데"
"다정하고...착하고...머리도 쓰다듬어주니까?"
"그정도는 나도할 수 있는데! 너도 바보야!"
"흥! 못하거든! 호쵸 나보다 키 작삲아."
"아냐!"


호쵸는 까치발을 들어 손을 올렸다. 있는 힘껏 문질러 대는 통에 아이는 중심을 잃고 뒤로 휘청거렸다. 눈을 질끈 감자, 팔이 잡아당겨지는 느낌이 들고, 이번에는 앞으로 넘어졌다. 눈을 뜨자 호쵸가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와아아...


"호쵸가 작아서 넘어진 거 잖아!"
"이, 이. 그래도 내가 잡아서 안 다쳤잖아!"


니혼고

아저씨다. 조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얼빠인편이라, 도검남사의 미모가 수려하다기에 이 길을 골랐는데, 눈앞에 있는 건 다시봐도 역시 아저씨였다. 초기도는 잘생긴 쾌남이고, 단도도 시원시원한 성격의 쿨한 미소년이었고, 다른 남사들도 미소년에서 벗어나는 일이 적었다. 그런데 아저씨다. 왜? 하고 의문해봐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남사를 보고 이렇게 멍해졌던 것은 처음이다. 그런 반응을 뭐라고 해석한 건지. 무츠노카미가 조심스럽게 괜찮냐고 물어왔다. 물론 괜찮다. 사적인 사정은 사적인 거고, 공적인 일에 영향을 끼치진 않을테니까.

그럼에도, 어쩐지 개운치가 않아서...

일단 이 찝찝함을 해결하기위해 그날 이후 니혼고를 계속 따라다녔다. 일단은 혼마루 적응을 돕는다는 명목이다. 단지 그 뿐인데 니혼고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 같다. 심지어 당사자마저 그걸 믿어버렸다. 자긴 도검남사라서 역시 인간과 사랑을 나눌 수 없다고

"고백도 안했는데 차여야한다고?!"

라기보다, 명백하게 오해다. 그냥 왜 그가 아저씨인가가 신경쓰였을 뿐으로 결코 그런 호감은 없었다. 어이없어 굳어버린 나를 무츠노카미와 야겐이 위로했다. 아니 저기, 아니라고. 그런거 아니라니까? 답답해서 상위에 있던 잔을 원샷했다. 옆의 두자루가 당황하더니, 그래. 그거라도 마시고 다 잊어버리자는 말을 했다. 진짜 미치겠네. 다시 해명하려고 니혼고쪽으로 돌아봤다. 미안함과 씁쓸함이 버무러진 그 표정을 보고 나는...시작도 안했는데 차여야한다고?


코우세츠

싸움은 싫어합니다. 하고 처음 그는 말했다. 하지만 내보냈다. 전력부족이니까. 타협의 여지란 없다. 하지만 출진에 나갔다 온 뒤 정도는, 조금 신경써도 좋지 않을까. 전주인이나 도공의 인연으로 도검남사는 나름의 무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들어 카슈는 신센구미의 칼들과 어울리고 마에다는 아와타구치 형제들끼리 사이가 좋다던가. 서로서로 잘 챙겨주니 상대적으로 걱정이 덜 된다. 코우세츠는-...
그도 사몬지라는 도파를 가지고 있으나, 아직 이 혼마루에는 그 혼자다. 다행히 사요 사몬지도 소우자 사몬지도 얻기 힘든칼이 아니니 며칠만 참으면 되겠지만.


"제 사니와명은 사에몬左衛門이라고 쓰거든요. 첫글자가 똑같이 왼좌에다가, 발음도 어쩐지 사몬지랑 비슷하지 않아요? 그러니까...그, 진짜가 올 때까지 동생처럼 대하셔도 좋아요"


그렇군요. 하고 그는 느릿하게 대답했다. 하늘은 어둑해져, 낮의 색은 자취를 감췄다. 그의 푸른 머리카락에도 밤이 내렸다. 나는 코우세츠의 눈치를보며 조금 더 가까이 붙어 앉았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린아이가 아니니까요."
"하하,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나봐요."


멋쩍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희미하게 사에몬...지인가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깜박였다. 방금 뭐라고요?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필요할 때는 오빠처럼 의지하셔도 좋습니다."

 


부젠

비보의 마을, 힘냈습니다.
코테기리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정말 열심히 베고 화투치고 달리고 달려 무라쿠모를 영입! 고우파 전원이 모였다. 하하. 코테기리는 기쁨의 눈물을, 나는 손으로 코밑을 쓱 훔치며 뿌듯해했다.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으로 폴랑폴랑 집무실로 향하자 역시 비보에서 대활약해주신 부젠 고우와 조우했다. 서로 치하의 말을 남기고, 흥에 들뜬 나는 부젠의 양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뛰어다녔다. 


"으하하하, 좀 더 빠르게 돌까?" 그대로 목에 매달리며 점프하자 부젠은 솜씨좋게 거기서 공주님 안기로 자세를 바꿨다. 

"꺄아! 오빠 달려~!"


우리는 그대로 혼마루 내달렸다. 너무 빨라서 멀미가 올라왔지만 오늘의 나는 절호조다. 이 정도로는 지지않느으우엑. 아, 졌다. 쩔쩔매며 부젠에게 거듭 사과했다. 물론 부젠은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너무 들떠있던 것을 반성했다.
어느정도 진정하고 나니 새삼스러운 것을 알게되었다. 겉옷없이 셔츠만 입은 모습은 처음보는 것 같다.


"그러고 있으니까 잡지 모델같다"
"이런 거?"


시덥잖은 말에 장단을 맞춰 부젠이 포즈를 취했다. 눈부시군.  손으로 빛을 피하듯 눈앞을 가로막자 부젠이 깜짝 놀라서 다가왔다.


"괜찮아? 어디 다친거야?"


너무 진지해서 차마 주접이었다고는 못할 분위기였다. "누운...에 뭐가 들어갔...나..." 부젠은 자기가 봐주겠다며 한손으로 내 볼을 잡았다.


"어느 쪽이야?"
"왼쪽... 아니 미안 거짓말이야"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눈이 멀 것 같다. 내 이실직고에도 부젠은 잠시만, 하고 운을 뗐다. 다음 순간 왼쪽 눈꺼풀 위에 뭔가 닿았다 떨어졌다.


"미안, 나도 거짓말이야"


타로타치

실수했다. 변명부터 해두자면, 일평생 신장제한에 걸려본 적이 없는 탓에 간과한 것이다. 있다 하더라도 '작아서' 걸린 거지, '너무 커서' 걸린 적은 없었다. 모처럼의 포상휴가로 제안한 현세 나들이인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패닉이었다. 이제와 예정을 바꾸자니 신장제한에 걸리지 않는 협타들은 이미 뽈뽈이 흩어진지 오래였다. 어쩌면 좋지. 흘긋 올려다본 타로타치는 안내 팜플렛을 꼼꼼히 읽고 있었다. 아악! 기대하고 있던 어트렉션이라도 있었나봐!


"타로타치...그게..."


아무래도 신장 제한에 걸려서 못 탈 것 같아. 그런 잔인한 현실을 도저히 입밖으로 낼 수 없었다. 안절부절하는 내게 타로타치는 팜플렛의 한켠을 손으로 가르켰다.


"20분 뒤에 야외공연이 있나봅니다."


이거라면 타로타치도 즐길 수 있다. 나는 반색하며 지도를 뒤적였다. "이 공연 말이지-...!" 다행히 멀지 않은 지점이다. 타로타치의 손을 붙잡고 우리는 A에리어로 향했다.

시간이 절묘했다. 공연 시작 전, 사람들이 무대 근처에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좋은 자리는 이미 다 차버렸지만, 어차피 시야를 가릴테니 앞에 앉는 것은 불가능했다. 적당한 곳에 나란히 앉자, 사회자가 나와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도 많이 오는 유원지라서 그런가 일본어와 영어로 한번씩 해설 한뒤,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배우의 손에 얹어진 개구리들이 합창했다. 영화 속에서 봤던 그거다. 한곡이 끝나고, 잠깐 타로타치쪽을 확인하자 그가 이쪽을 보면서 웃고있었다. 다행이다. 즐기고 있나봐. 

약 40분정도의 공연이 끝나고, 둘이서 유원지의 세팅을 구경했다. 원작 내용을 보충 설명하면서 한껏 즐기고 나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타로타치가 평소보다 즐거워 보여서 나도 더 열심히 이야기했다. 타로타치는 길에 세워진 커다란 시계를 보더니, 퍼레이드에 늦겠다며 나를 재촉했다. 

"뭔가, 타로타치가 나보다 더 익숙한 느낌이네."
"당신이 기대하는 것 같아서, 콘노스케에게 미리 물어봤습니다"
"에."

그말인 즉슨, 처음부터 타로타치는 신장제한에 대해 알고 있었고, 미리 기구에 타지 않는 즐길거리를 알아왔다는 이야기?

"타로타치랑 다른 애들을 위한 외출이었는데, 오히려 신경쓰게 만들었네. 다음에, 다른 곳에 한번 더 나올까?."
"예. 주인과 함께니까 분명 즐겁겠죠."